1.사실과 정보를 경험하는 것으로 만족하던 때가 있었다. 그것을 보았고, 다녀왔고, 가지고 있다는 사실들을 특히 사진이나 기억으로 남는 언어들로 보관하면 더없이 만족스러웠다. 그땐 이상하게도 사진과 덧붙일 짧은 문장 하나 남기기가 어려웠다. 아예 쓰지 않거나, 감탄 어를 쓰거나 "너무 좋았다."라는 말이 전부였다. 경험의 종류와 양을 최대한 많이 겪어내는 것을 열심히 하다 보니 허전했고, 결국엔 지루해졌다. 블로그를 하고 브랜드를 운영하면서 할 수 있는 언어가 한정적이라는 것도 드러났고, 답답했다.이런 상황은 내 시간을 갖고 느껴야 한다는 것에 집착하게 했다. 집에서의 시간, 밥을 차려 먹는 시간, 산책을 하는 시간, 계절을 느끼는 시간 등 경험했다는 사실을 남기는 것보다 경험 자체로 들어가고 싶었다. 어설퍼도 경험 속에서의 내 느낌을 알고 싶고 표현하고 싶었다. 그렇게 스스로 훈련 아닌 훈련을 하다 보니 밥을 차려 먹는 것도 매일 다르고, 출근길도 달랐다. 어떤 날은 피곤하고, 어떤 날은 유달리 가뿐하고, 어떤 날은 바람이 세고, 어떤 날은 흐렸다. 변하고 달라지는 당연한 것을 알게 되니, 변하는 것을 똑같이 보며 살고 싶지 않았다. #무이식탁 이라던가 #봄생활 이라는 타이틀의 게시물들은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지하에서 가방 공장을 운영하시며 밤에 집에도 못 가고 일만 했다는 사장님과 밥을 먹으면서, 깊숙한 곳에서부터 "사장님 계절 바뀌는 건 느끼세요?"라는 질문이 터져 나왔다. 둘 사이에 잠시 씁쓸한 기류가 흘렀다. 사실 묻지 않아도 알고 있었던 "모르면서 살지 뭐."라는 답이 돌아왔다.2.봄은 변화가 큰 시기이다. 내게는 가장 역동적이고 밝고 거센 계절이기도 하다. 그 에너지를 감당하지 못할 만큼! 그때 가지에서 갓 피어나는 여린 잎들이 있다. 이제 막 초록이 되어가는 노란 연둣빛의 이파리들이 있다. 메말랐던 가지에 촉촉하게 피어나는 그것을 볼 때 나는 힘이 나고 위로를 받는다. 아주 1차원적으로... 그런 생기로움을 가방에 표현하고 싶었다. 비록 물건이고, 혼자의 생각으로 끝날 수도 있지만, 매일 다르듯이 매일 사용하는 물건에서 영감을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바람이 있었달까!3.패션적으로 접근한 게 아니어서 주변에선 이 색이 코디하기 어렵지 않겠냐는 의견을 주었다. 고로 너무 채도가 높지 않도록 기존의 옷과도 잘 매칭할 수 있는 카키톤이 가미된 올리브 색을 떠올렸다. 기성 원단엔 원하는 색이 없었으므로, 여러 번의 샘플링을 거쳐 염색을 했다. 봄이기도 해서 기존 바리백보다 1단계 얇은 2합(2가지 실을 꼬아 제직한) 캔버스 원단으로 만들어봤는데, 역시 바리백의 사이즈나 형태감은 3합 원단이 맞았다. 2합 원단도 염색한 게 꽤 되는데 ㅠㅠ 3합으로 진행!! 소규모 업체는 이런 개발비나 들이는 시간이 굉장한 부담인데, 어설퍼도 내 느낌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처럼 시도해봐야 된다고 생각했다.4.애초에 바리백을 구상할 때 개인적으로는 이너 포켓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데 써본 사람들의 의견을 받아 내부의 주머니를 추가했다. 그리고 끈 길이를 조금 줄였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끈을 끝까지 2줄로 포개어 숄더로 멜 때 분명 뉘앙스가 달라진다. 전보다 가방이 덜 덜렁거리고, 몸에 밀착되면서 쳐지는 모양도 조금 다르다. (굳이 얘기하자면 덜 캐주얼한 느낌?) 이건 짐이 많은 아기 엄마이신 손님이 의견 주셨던 내용이다.5.다행히 지금까진 리뷰가 좋다. 스스로 집중하는 것도 힘이지만, 피드백에서 받는 힘은 엄청나다. 다음을 행동하게 만드니까!